한국의 〈마쓰시마=울릉도〉 인식에 관한 새로운 사료에 대하여

새로운 사료에 대하여(한국어)

 19 세기 말까지 조선왕조(대한제국고위 관료들이 울릉도(鬱陵島)를 일본식 발음인마쥬시마(마쓰시마)라 부르며 일본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새롭게 확인되었다.

 

 이번에 나가시마 히로키(永島廣紀)  교수(규슈대학)가 확인한 자료는 1896 년 월에열린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세의 대관식에 특명전권공사로 파견된 민영환(閔泳煥:1861-1905)의 수행원이었던 등서기관 김득련(金得錬:1852-1930)이 작성한 기록환구일기(環日記)》와 부아기정(赴俄起程)》이다.

 그 양서는 러시아 방문 사절단이 1896년 4월에 한국을 떠나 같은 해 10월에 귀국할때까지의 여정을 공적으로 자세히 기록한 책이며일기 부분은 두 권 모두 동일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현재 두 책 모두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를 왕래할 때 동쪽 항로가 선택되어 일본과 미국 등을 거쳐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였다대관식이 끝난 후 잠시 현지에 머문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였고그곳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귀환하였다.

 그러던 중 1896년 10월 17일 오후부산에 도착하기 직전 민영환 일행이 탄 배는 육지를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다그때 진행 방향 왼쪽 멀리 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김득련의 일기에는 이것이일본인 마쥬시마라고 한글로 쓰여져 있었다. 【자료참조

 

 한글은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이다대한제국 관료 중에는송도(울릉도)〉를 일본어 발음인마쥬시마(마쓰시마)〉라 부르며아울러 일본 땅이라 인식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울릉도에는 해발 약 1,000 미터에 달하는성인봉(聖人峰)〉있으며, 〈이라는 표현은 바로 성인봉을 가리킨다. (현재의 다케시마오지마(男島)〉는 표고가 168미터임).

 덧붙여이 글을 포함한 김득련의 일기 부분은 민영환의 유작인해천추범(海天秋帆)》에도 누락 없이 수록되어 있다민영환은 임금(황제)의 외척인 여흥 민 씨 출신의 유력자이자 주요 관직을 역임한 인물로,  1905 년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된 것에 항의하여자결한 순국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한편이러한 인물이 남긴 기록인 만큼 그 내용에는 오히려 신빙성이 높다.

 그런데 1898 년 4한 해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국인들을 구한 러시아 측과의 교섭 과정에서 이 사고가일본맛주시마마쓰시마앞바다에서 일어났다고 명기한 한국 측 외교문서가 남아 있다이 사건에 관해서는 일찍이 제 다케시마 문제에관한 조사연구중간보고서》(2011)에 실린 야마자키 요시코(山崎佳子) 씨의 논문에서 다룬 바 있다이 논문에서는 같은 (울릉도)이면서도 세 가지 이름(다줄레·울릉도·마쓰시마)이 서로 혼동되는 가운데한국 정부가맛주시마를 일본 섬으로 인식했다가 나 중에 이것이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임을 다시 인식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환구일기등의 기록에 따르면이러한오해는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애초부터 한국 관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인식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1896 년 가을을 지나 1897 년에도 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는 울릉도 나무 벌목 문제를 둘러싼 여러 차례의 교섭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898 년에 이르러서도 한국 외교 당국은마쥬시마/맛주시마가 여전히 일본 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다름이 아니다오늘날의 다케시마는 에도(江戸) 시대까지 일본 측에서 마쓰시마불렸고오늘의 울릉도는 다케시마라 불렸으나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서양 지도에서울릉도가“Matsushima”로 표기되기 시작하면서 관민 할 것 없이 울릉도를 일반적으로마쓰시마라 호칭하게 되었다.

 한편한국 측은 예로부터 막연하게 울릉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해 왔으나지리적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실제로 1900 년에 들어서야 울도군(鬱島郡)을 설치하여 행정 업무를 시작하였다.

 새로 나온 자료들은 앞서 제시된 조난 사건 관련 자료와 함께 19 세기 말까지 한국측에서 울릉도 형편에 관한 어긋난 정보가 오가며실태 파악에 심각한 혼란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한국은 일본 측 자료에서 마쓰시마라는 표기가 등장하면이 마쓰시마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을 경우 아무런 비판 없이 이를 에도 시대의 마쓰시마로 간주해 왔다나아가 그 (오늘의 다케시마한국 측 명칭 독도)이 한국영토임을 입증하는 증거라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그러나 이번에 뜻하지 않게도한국은 자국 측 자료에 의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원문

十七日 陰十一日 俄五日 晴、船人言、卯正、已過元山港外洋、一直向南、天氣漸喧、回思所經寒苦、殆若夢境、雖是無風、海深波湧、船甚簸搖、人多蟄臥、午后、見東邊有一大山、名마쥬시마此日本島、一點青峯出没於西北間云、是我邦山、遠莫能知其名

 

국역

〔1896 년 10 〕 17 ,  음력〔9 〕 11 율리우스력〔10 〕 5 

 맑음선원이 말하기를오전 시경 이미 원산항 먼 바다를 지나 남쪽으로 직진하고 있었다고 한다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지금까지 추위에 시달렸던 곳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람은 없었지만 바다는 깊고 파도가 높아 배가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오후에 동쪽에 큰 산 하나가 보였다이름은 마쥬시마로일본의 섬이다서북쪽 멀리에는 청청한 산이 가끔 보인다고 한다그것은 우리나라 산이지만 멀어서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참고

국사편찬위원회, 《민충정공유고》(담구당, 1958 년 12 )

민영환, 《해천추범》 (울유문화사, 1959 년 )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엮음, 《구한국외교문서》 17 ·아안 1 (고려대학교출판부, 1969 년 )

야마자키 요시코, 〈1898(메이지 31 ) 년 한국선 조난사건에 관한 일고찰〉, 제 기 시마네현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제 다케시마문제에 관한 조사연구중간보고서》, 2011 년 

https://www.pref.shimane.lg.jp/admin/pref/takeshima/web-takeshima/takeshima04/kenkyuukai_houkokusho/takeshima04-02/index.data/4_2chu-1898.pdf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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