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마에서의 강치 조업(사진제공:산인중앙신보사)

다케시마가 발견된 정확한 연도는 확실치 않지만 늦어도 에도시대 초기에는 일본인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1618년 무렵부터 요나고의 오진키치(大谷甚吉)와 무라카와이치베(村川市兵衛)라는 사람이 막부의 허가를 얻어 울릉도(당시에는 다케시마로 불리었다)로 건너가 전복, 강치 등의 어렵 활동과 죽목 벌채 등을 하였습니다. 이 울릉도로 가는 도중의 기항지로써 또 어획지로써 다케시마(당시는 마쓰시마 불리었다)를 이용했습니다.1661년 무렵부터는 마쓰시마(오늘날의 다케시마)에 정식으로 막부의 허가를 받고 도항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에도막부는 조선과의 분쟁으로 인해 1696년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였으나, 마쓰시마(오늘날의 다케시마)에 대해서는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1836년에 하마다의 이마즈야하치에몬(今津屋八右衛門)이라는 사람이 금령을 어기고 울릉도에 건너간 이유로 처벌받았지만, 그 재판기록을 보면 마쓰시마에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고 나와 있습니다. 마쓰시마에 대한 지식은 서적이나 지도에 기록되어 에도시대 내내 계승되었습니다.

메이지시대에 접어들어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어민이 울릉도로 가게 되었고 그 도중에 다케시마를 거쳐 갔습니다. 메이지 20년대 말부터 오키섬의 도민들이 다케시마에서 전복, 강치 등의 어렵에 종사했습니다.


이와 같이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보아 일본의 영토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